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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19-02-14 14:06
[피플앤스토리]“어둠 속 헤매던 서른 즈음에 노래를 만나 세상과 손잡았다”
 WRITER : 운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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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장애 가수 `철부지' 김형천씨가 원주시 귀래면 자택에서 노래 연습을 하고 있다. 그는 어른들이 즐겨 보는 공중파 음악 방송에 나가 멋지게 노래하는 것이 최종 목표다(맨 위 사진). 지적 장애 가수 '철부지'김형천씨와 어머니 정려운씨. 원주=오윤석기자

지적장애 2급·시력장애 5급·뇌전증…막막했지만 벌써 데뷔 1년
세 줄짜리 무대 인사 외우는데 꼬박 한 달, 지금은 서른 곡 외워
전국 각지서 초청…공연 보고 팬들 늘면서 후원회까지 결성

비록 낳아주시진 않았지만 어머니는 포기 않고 믿어준 사람
말도 똑바로 못 하는 아들 혹사시켜 돈 번다 손가락질 받기도
보란듯이 공연 수익금 기부…공중파 음악방송 나가고 싶어



`꽃이 피면 꽃바람 따라 세상 구경 여행을 떠나요.'
원주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지적장애 가수 `철부지' 김형천(32)씨는 자신의 노래 `꽃바람'의 한 구절처럼 인생 꽃을 피워 세상을 여행하고 있는 중이다. 지적장애 2급, 시력장애 5급, 뇌전증 등 그의 서른둘 인생은 장애와 병마로 한때 어둠속을 헤맸으나 노래를 만나 무대에 오르면서 비로소 세상과 손잡을 수 있었다. 이런 시간이 오기까지 그의 곁에는 어머니가 늘 함께했다. 비록 자신을 낳아주신 분은 아니지만 오늘날의 `철부지'를 있게 한 사람은 지금의 어머니였다. 세상과의 따뜻한 악수는 그렇게 시작됐다.
13일 만난 그는 비록 어눌하지만 당당한 말투로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라며 묻고는 자신의 노래 앨범에 이름과 `늘 행복하세요'라는 사인 글귀를 써 내려갔다. 대화가 원활하지 않은 그의 의사를 전달해 주기 위해 시인이자 어머니 정려운(57)씨가 인터뷰에 동석했다.

■지난해 5월 데뷔했다. 1년을 채워 가는데 반응은 좋은지

“`철부지'라는 예명이 잘 어울린다는 소리를 많이 듣는다. 직접 운영해 온 원주시 귀래면 펜션에서 야외 공연장을 만들어 첫 데뷔 무대를 가졌다. 관객 150명이 모였는데 그때 받은 환호성과 박수가 가수 활동의 큰 힘이 됐다. 전국 방방곡곡을 돌며 30차례가 넘는 공연에 올라 이름을 알렸다. 국내 최초 지적장애 가수라는 타이틀로 여러 언론과 방송의 관심도 받았다. 지금도 지역의 크고 작은 행사부터 전국 각지에서 초청이 들어온다. 감사하게도 팬들이 지난달 원주시내 식당에 모여 후원회 발족식도 열어줬다.”

노래 가사 직접 쓰려고 詩 공부

■`국내 최초'라는 타이틀에서 그동안의 노력이 느껴진다

“태어나면서부터 시력이 좋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성장이 느렸고 나중에야 지적장애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가수 데뷔라는 목표를 정하고 세 줄짜리 무대 인사를 외우는 데 꼬박 한 달이 걸렸다. 수백, 수천 번을 중얼거리며 연습해 간신히 얻은 성과였다. 노래 가사를 외우고 음정을 배우는 것은 더 큰 숙제였다. 발성을 연습하고 나면 가사를 외우고, 다시 음정을 익혀 가는 숙제를 하나씩 풀어갔다. 노래에 감정을 실어 부르는 일은 더 막막했다. 그래도 지금은 서른 곡이 넘는 노래의 가사를 외운다. 아직 미숙하지만 피아노도 연습하고 있다. 내 노래의 가사를 직접 쓰고 싶어 시 쓰는 공부도 하고 있다.”

■가수 데뷔까지 주변의 도움이 많았다고

“제 노래를 들은 정규훈 총신대 교수가 `순수하고 맑은 목소리가 영원하길 바란다'며 철부지라는 예명을 붙여줬다. 너무 잘 어울리는 이름이라 생각한다. 밖에 나가면 `철부지다!' 하면서 알아보는 팬들도 있다. 쉽게 기억할 수 있는 예명을 선물해주셔서 지금도 감사하다. 데뷔 앨범 수록곡 3곡은 모두 작곡가 원종락 선생님의 도움을 받았다. 발성부터 노래까지 레슨도 지원해 줬다. 공연을 보고 팬들이 하나둘 늘어 후원회도 결성됐다.”
김씨 옆에서 그가 하는 말을 바로잡아 주고 보충 설명을 해 주던 어머니 정려운씨의 목소리에서는 가끔씩 물기가 묻어났다. 인터뷰를 하는 동안 과거 기억이 떠오르는 것 같았다. 어머니 정씨는 1998년 지금의 남편과 재혼했다. 당시 형천씨는 11살로 남편과 함께 살고 있던 아이였다. 그때부터 시각·지적장애를 다 갖고 있던 형천씨를 돌보기 시작했다. 어릴 때 충북에 있는 맹학교를 보내 그곳에서 전문대학 과정까지 마치도록 했다. 그 후 장애인 고용 업체 10여 곳에 취업을 시켰지만 오해와 편견은 사라지지 않았다. 결국 2015년 여름 형천씨는 상처만 안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엄마 눈을 똑바로 못 쳐다볼 정도로 지치고 위축돼 있었다. 정씨는 너무 가슴이 아팠다고 했다. 정씨에게 질문을 던졌다.

■어떻게 노래를 하게 됐나

“집 안에서 종일 지내면서 아들이 끼고 살던 것이 카세트 플레이어였다. 간단한 물 심부름도 잊어버리는 아들이 노래는 곧잘 따라 부르는 모습을 보고 노래 교실을 보내야겠다고 생각했다. 처음부터 가수 데뷔를 염두에 둔 것은 아니었다. 2016년 작은 아들을 사고로 먼저 떠나보내야 했고 세상이 무너진 채 살았다. 그런데다 제가 암까지 걸렸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누워 지낼 때 옆에서 곁을 지키는 형천이가 눈에 들어왔다. 내가 죽기 전에 언젠가 홀로 남을 아들에게 미래를 만들어 줘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래서 노래를 시키기 시작했다.”

■결국 가수로 데뷔했다. 소회도 남다를 것 같은데

“아들이 수많은 관중 앞에서 무대 인사를 하고 노래를 부르는 일이 정말 가능할까 수없이 고민하고 걱정했다. 그런데 무대에 올라가니 긴장한 기색 없이 너무 씩씩하게 노래를 부르더라. 이제는 미리 외워둔 무대 인사에 관객들에 맞춰 응용 멘트를 더할 정도로 자신감이 올랐다. 가수 데뷔를 하고 나서 어느 날 형천이가 곁에 와서는 `11살에 엄마를 처음 봤을 때는 다들 그랬듯 저를 금방 포기할 줄 알았어요. 곧 지치겠지 했는데 여기까지 믿고 데려와줘서 고마워요'라고 속내를 털어 놓더라. 그 말을 듣고 정신없이 울었다. 형천이는 노래, 나는 형천이 덕분에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제2, 3의 `철부지' 나오길 바라

■주위의 오해도 있었다고 하는데 무슨 얘기인가

“속사정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말도 똑바로 못 하는 장애 아들을 혹사시켜 돈을 번다'며 손가락질을 했다. 너무 속상했다. 그래서 지난해 가수 철부지가 거둔 공연 수익금을 모두 도내 특수학교와 장애인 단체에 기부했다. 올해도 공연에 필요한 경비를 빼고 수익금 일부를 꾸준히 모으고 있다. 장애인 자립을 도와 제2, 3의 철부지가 나오길 바라는 마음 뿐이다.”
마지막으로 형천씨에게 가수 `철부지'의 꿈이 뭐냐고 물었더니 똑부러지는 대답이 돌아왔다. “가수 데뷔를 준비할 때는 봉사하는 마음으로 임하자는 생각이었어요. 지금은 응원해주는 팬들이 늘고 공연에 자신감도 붙어 더 큰 꿈을 가지려 합니다. 어른들이 즐겨 보는 공중파 음악 방송에 나가 멋지게 노래하는 것이 최종 목표예요. 장애를 가졌지만 멋진 가수로 활동해 더 많은 사람에게 메시지를 전하고 싶습니다.”
그와 헤어지고 나오는 길에 `장애는 신의 축복'이라고 했던 시각장애인 미국 가수 `스티비 원더'의 `이즌 쉬 러블리'(Isn't she lovely)가 어디선가 흘러 나오는 듯했다.
원주=정윤호기자 jyh89@